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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문수, 18세기 탕평관료의 이상과 현실

주지태 2014. 6. 24. 19:11

 

 

 

○ 도서명 : 박문수, 18세기 탕평관료의 이상과 현실

○ 지은이 : 김백철

○ 발행처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초판 1쇄 발행일 : 2014년 6월 10일

 

 

 

대형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서 박문수단어를 넣어 그에 대한 책이 얼마나 있는 지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책이 암행어사와 관련된 동화책이나 위인전류의 책이었다. 포털사이트에 가서 다시 박문수단어를 넣어 검색해보았다. 몇 편의 학술논문이 있으나 박문수에 대한 일반도서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 암행어사뿐만 아니라 경세관료로서 박문수의 삶과 생각 그리고 성정을 이해할 수 있는 귀한 도서로 생각한다.

 

박문수는 어떤 가문 출신이며 어떻게 관직에 올랐을까? 본관은 고령 박씨이고 이조판서 박장원의 증손이고 영은군 박항한의 아들이며, 모친은 공조참판 이세필의 딸로서 명문 세가의 자제였다. 박문수가 관직에 등장하는 등과 기록을 보면 1723(경종 3) 나라의 중요한 일을 기념하여 추가로 치르는 과거인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로 뽑혔다. 당시 정세는 소론 정권으로의 환국이 있었으므로 급제한 해에 9품에서 시작하여 2년 만에 6품까지 이르렀으며, 이후 정5품에 이르는 병조 정랑의 지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1725(영조 1) 노론이 힘을 가지면서 박문수는 소론 일파로 지목되어 병조 정랑에서 물러났다. 1727년 처음 암행어사 임명받아 그 임무를 잘 수행하였다. 그리고 관리가 비행이 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비행이 없더라도 목민관으로 부적합한 인사를 모두 퇴출시켰다. 4지역의 관찰사를 지낸 박문수는 전란과 재해로 인하여 면세 요청을 적극 추진하였다. 실제 그의 재임 기간을 보면, 어사보다는 관찰사 부임 기간이 훨씬 길었다. 그럼에도 그를 고위 관료가 아닌 어사로 더 깊이 기억하는 것은 박문수가 통치자로서 군림하기보다 백성의 생활을 잘 살펴 그들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어사와 같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는 암행어사의 전설과 관료로서의 역사를 오가는 박문수라는 인물을 영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영조 초기 탕평이 아직 뿌리내리지 못해 노론과 소론의 환국이 번갈아 이루어지던 때에 당론은 더욱 강력하였다. 영조는 당론 자체를 무력화하고 오직 탕평의 대의에 동참하여 국왕에게 충성하는 세력만을 충의로 인정하고자 하였다. 박문수는 당색으로는 소론 강경파에 해당하는 인물이면서도 당론의 폐해를 비판하고 당색에 구애됨이 없이 인재를 등용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당색이 같으며 부정을 저질러도 감싸고 도는 당습이 모든 폐단의 근원이라고 진단하였다. 박문수는 자기가 속한 당파에 치우지지 않으면서 나라의 질서와 정의를 생각하며 아는 것을 실천한 지성인이었다.

 

그는 처벌을 각오하고라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였다. 경연 자리에서 과격한 발언과 말다툼으로 제멋대로인 행동을 하고서도 임금의 사랑을 받은 이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당색에 따라 규정되기보다는 선왕과 신왕 모두에게 충을 의무이자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여기는 존재였다. 그는 환국정치를 비판하고 새로운 탕평의 방향으로 백성의 근심과 나라의 계획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자가 있으면, 조정이나 초야를 막론하고 조목마다 비답을 내려 그 말을 채택하여 써야 한다.”고 말하였다. 또 농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부담으로서 군포의 폐단을 들고, 이를 적절히 감면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지적했다. 병조판서가 된 박문수는 명문가의 자제인 것만 믿고 소동을 일으킨 선전관을 단호히 처벌하였다. 영조의 도성 방위 전략과 대사마 중심의 군제 개편은 정조 대에 이르러 군영의 통폐합과 병권의 직접 장악으로 이어졌는데 이런 시발점에 박문수의 노력이 있었다. 박문수는 호조판서를 역임하면서 국가 재정의 기초를 재확립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세정에 관한 출납에 있어서 엄정을 기하도록 했다.

 

영조는 박문수가 있음으로 하여 조선 문화 중흥을 이룬 임금이 될 수 있었으며, 임금과 박문수가 서로의 마음을 알고 그것을 믿어준 긴밀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았다. 박문수의 성격은 다혈질이고 급하여 적대자도 많았지만, 공의로운 마음으로 임했기에 임금의 굳건한 믿음을 받았으며 조선 봉건시대의 폐단을 바로 잡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최근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국가의 개조에 대한 담론이 화두이다. 또한 국가를 개조할 수 있는 지도자를 찾고 있다. 정쟁을 일삼고 사회정의에 무딘 세력과 사람들이 있는 한 국민들이 지배세력과 사회 지도자에게 원하는 것이 지금과 옛날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국의 혼란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공의를 주장한 멋있는 어사, 힘있는 탕평관료 박문수와 같은 사람을 찾아 국가 개조의 권한을 준다면 적폐가 있는 한국의 사회를 일소하고 희망있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영조의 신임을 받은 박문수가 붕당정치와 환국정치 속에서 진정한 탕평정치를 왜 실시하고 어떻게 이루어 가고자 했는지에 대한 사실을 바탕으로, 현재 한국 사회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마련할 수 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하여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