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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조선의 왕실 복식(신분제 질서를 뒷받침하는 디자인과 색조의 미)

주지태 2014. 4. 21. 17:00

 

 

○ 도서명 :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조선의 왕실 복식

○ 지은이 : 이민주

○ 발행처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1판 2쇄 발행일 : 2014년 3월 28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열리는 <조선국왕과 선비전>을 관람하면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 조선태조어진에 왕의 복식이 나온다. 평소에 왕실 복장에 나타난 문양과 색깔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궁금하였는데, 마침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에서 독자평가단에게 이것과 관련있는 책을 독자평가 도서로 보내주었다.

 

조선의 왕실 복식을 이해할 수 있는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책을 통하여 조선 시대의 왕실 의복의 모양과 의복 문화에 나타난 상징과 특징 등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모든 사람이 왕처럼 존중받는 민주주의 시대가 열려 일반 국민도 왕실에서 즐겨먹었던 궁중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사극에 출연하는 연기자를 제외하고는 아직 일반 국민들이 왕과 왕비 등의 왕실 복장을 갖추어 입어 볼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금도 왕과 왕비의 복식은 아무나 입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왕과 왕비의 복식을 준비하고 갖춰 입기가 어렵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왕실의 음식과 복장을 현대에 맞게 계승하고 활용한다면 우리문화의 품격이 높아질 것이며, 우리나라 왕실의 문화를 세계인에게 알리고 보여준다면 수준 높은 한국의 문화에 놀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왕실의 복장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왕실복식을 직접 입고 만들고, 공급하는 기관과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왕실복식이 완성되고 복식 재료가 공급되는 과정을 입체적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책은 4부로 구성되었는데, 1로열 패밀리를 위한 옷, 2용을 그린 왕의 복식’, 3봉황을 수놓은 왕비의 복식’, 4왕실복식을 책임진 기구로 구성되었다.

 

그러면 1부에 나오는 왕실복장의 세계로 떠나 본다. 일반인이 입는 평상복과 의례복을 왕실가족에게는 어떤 옷이라고 부를까? 왕실가족의 일상복은 의대(衣襨)이며, 의례복은 법복(法服)이라 부른다. 의대는 왕,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이 입는 모든 복식을 높여 부르는 말이며 왕가의 신분에 따른 의복과 구분하였다.

 

왕실의 복식은 대표적인 명절과 계절에 맞춰 바뀌며, 계절의 변화에 따른 추위와 더위를 대비하기 위해 늘 한 계절을 앞서 한 벌씩을 더 올린다.

왕실 의대에서 즐겨 사용했던 색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 알아보자. 자색은 왕실의 의복이나 궐내에서만 사용하는 색이다. 홍색은 왕과 왕비의 대표적인 복색이다. 두 원색을 혼합하여 만든 간색으로 보색 배합을 하여 강렬한 인상과 상생의 효과를 나타냈다.

 

조선은 의식을 행할 시에 신분과 절차에 따라 복식을 갖춰 입는 신분제 사회이다. 이때 왕실은 의식과 의례를 치르기 위해 대례복이라는 법복을 입는다. 24~25쪽에는 국혼정례에 수록된 대전, 중국전, 세자궁, 세자빈궁의 법복과 의대가 소개되고 있다. 대전()과 세자궁(왕세자)보다 중궁전(왕비)과 세자빈궁(왕세자비)의 의대와 법복이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독자에게 사진으로 관련 의대와 법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에는 효명세자 가례절차 중 책빈례(빈을 책봉하는 의식), 친영례(왕이 왕비집에 가서 왕비를 데리고 와 왕가에서 올리는 혼례식), 동뢰연(왕과 왕비가 상견하여 상대에게 절을 마치고 술잔을 서로 나누는 잔치), 조현례(새로 간택된 비()나 빈()이 가례를 지낸 뒤에 처음으로 부왕(父王)과 모비(母妃)를 뵙던 예식)에 따른 법복의 변화를 소개하고 있다.

 

2부에서는 왕과 왕세자의 복식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이야기한다. 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복식은 면류관과 9개의 장문(무늬)가 있는 곤복(구장복)으로 구성된 면복을 입고, 왕세자는 7개의 장문이 있는 칠장복을 입는다. 왕은 면류관의 관 앞에 늘어진 류(면류관 앞에 늘어뜨린 구슬을 꿴 줄)의 수가 9, 왕세자는 8줄이 있다. 왕과 왕세자 면복의 차이는 장문의 수와 면류관 줄의 수 및 줄에 꿰는 옥의 색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구성상에서는 차이가 없다.

 

면복은 종묘와 사직 등 하늘과 지상 최고의 신을 영접할 때 착용하는 길복이며, 관례책례혼례 등의 가례에 착용하는 대례복이다. 장문 중에서 그림은 의()에 그리고 수는 상(치마)에 수놓는다. 왕가에서는 의와 상으로 나누어진 투피스 형식의 옷이 바로 예복이다. , 소매 끝, 밑단, 깃선 등에는 선을 둘렀는데 밖에서부터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고자 하는 벽사(사악하고 더러운 것을 물리침)의 의미가 있으며, 여기에 털을 다는 경우 사나운 동물의 털이 악귀를 막아 줄 거라는 생각으로 달았다.

 

38~39쪽에는 왕과 왕세자의 면복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보여주는 그림이 있다. 아울러 44~58쪽에는 각 면복(-끝이 뾰족한 사각의 옥, 면류관-모자의 기본틀인 면판과 앞뒤에 늘어뜨린 류를 합쳐서 부름, -가장 겉에 입는 상의, -하의, 대대-큰 띠, 중단-의와 상안에 받쳐 입는 옷, 패옥-여러 가지 옥을 연결한 것, -현의의 등 위에 드리는 것, 방심곡령-목둘레에 걸어 가슴에 늘어뜨리는 것, 폐슬-무릎을 덥는 것으로 의 위에 착용, -붉은 색의 버선, -제사 지낼 때 신는 신)에 대한 구조와 부분별 명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면류관은 왕이 면복을 입을 때 쓰는 관모로, 앞을 뒤보다 숙여 쓰고 면 앞에 류를 늘이는 것은 왕이 눈 밝음을 가리기 위한 장치였다. 패옥 미의 상징으로 옥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사심이 들지 않도록 경계하고자 하였다.

 

원유관복은 왕이 여러 신하를 대할 때, 동지삭망(음력 초하루날과 보름날) 등 하례를 받을 때, 출궁하고 환궁할 때, 중궁과 세자빈을 책봉할 때 입는 의복이다. 60~65쪽에 원유관복의 구성 그림이 나온다. 원유관은 비단으로 만드는데 9량이 있어서 매량에 18옥을 꿴다. 대한제국 고종이 착용하고 있는 원유관은 9량이 아닌 12량인데 특히 통천관이라고 한다.

 

시사복은 정무를 돌보면서 입는 옷으로 익선관은 모정(두건의 봉우리)2층으로 된 형태이며, 귀와 같이 생긴 양 각이 관 뒤에 붙어 있다. 왕 관모의 변화는 신하들의 관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익선관의 모정의 높이와 양 날개가 커지면 당시 관리들의 사모와 편복에 착용하는 갓의 크기도 함께 커졌다. 왕의 관모는 양 날개가 뒤에 붙어 위를 향하고 있는 반면, 신하의 관모인 사모는 양각이 옆에 붙어 있다.

 

개인적으로 옛 유교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상투 틀기에 대하여 호기심이 많았는데, 머리에서 발끝까지 꾸미기 편에서는 상투를 틀고, 망건을 두르고, 그 위에 망건을 두르고 그 위에 상투관을 쓰기도 하고, 탕건을 쓰기도 하며 그 위에 관을 쓰는 것에 대하여 적었다. 왕의 면류관은 탕건을 쓰고 나서 착용하는 것이다.

 

머리치장은 앞에서와 같이 실시했는데, 몸치장은 어떻게 했을까? 86~87쪽에는 가례와 절일에 맞는 법복과 의대의 목록을 제시하며, 이 내용에서는 법복 안에 입는 의대의 착용 순서, 평상복 안에 입는 의대의 착용 순서가 나온다.

 

3부에서는 왕비와 왕세자빈의 복식에서 적의, 노의, 장삼, 원삼에 대한 설명과 구성 그리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꾸미는 내용이 나온다.

 

적의는 왕비와 왕세자빈의 법복으로 친해와 해로를 상징하는 꿩무늬를 수 놓은 포이며 대례를 치를 때, 책비의(왕비를 책봉하는 의식)나 책빈의(왕세자의 배우자를 책봉하는 의식)를 거행할 때, 진연(궁중 잔치로 왕, 왕비, 대비의 생일 축하연) 등의 가례와 종묘(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뒤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하고 국가적인 제사를 지냄)나 영녕전 참배 등의 길례에 착용하는 복식이다. 적의 착의 순서는 166~167쪽 그림에 자세하게 나온다.

 

앞의 왕의 면복에서도 그랬지만 책에는 적의를 구성하는 각 물품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위치를 나타내는 사진이 있다. 적의를 구성할 때 머리장식을 해야 하는데, 머리를 꾸미기 위해서는 빗접1, 참빗 1, 얼레빗 3, 저모성 1개를 포함하여 흑각잠 1, 흑각장감 2, 대잠 10, 중잠 10, 차중잠 10, 머리장식이 없는 소잠 4, 차소잠 5개가 소용되었으며 빗을 보관하는 빗접과 함께 모두 47개의 장신구가 사용되었다. 왕뿐만 아니라 왕비도 머리 장식에 무거운 것을 올려야 했는데, 왕비의 수식의 무게는 3.85kg이었으니 불편하고 고생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노의는 왕비, 왕세자비 등 왕실 여성이 멀리 여행을 가거나 예복으로 입는 의례복으로 의대 중 가장 중요한 예복이다. 왕비의 노의는 흉배가 붙은 노의와 대로 구성되며, 왕세자빈의 노의는 흉배가 없다. ‘창피하다는 말은 대가 없어 옷을 여미지 못한 것을 말하며, 대가 없다면 그 옷은 이미 예복의 기능을 상실했다. 적의에는 운봉문(구름과 봉황의 무늬로 상승하강하는 2마리의 봉황이 마주보고 있음)을 노의에는 금원문(크기에 있어서는 운봉문보다 작으나 무늬는 같음) 흉배를 붙였다. 노의는 금원문이 부금되어 있는 왕실의 화려한 예복으로 중궁(왕후), 세자빈, 숙의(임금의 후궁), 대군의 부인, 공주 신분에 따라 문양과 흉배의 유무, 옷감의 차이가 있을 뿐 왕실 여성이 착용한 가장 귀한 옷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장삼은 왕비, 왕세자빈, 숙의, 대군의 부인, 공주, 옹주, 상궁, 유모 및 시녀, 기행나인 등 왕실 여성 모두가 입을 수 있는 옷이다. 옷의 형태는 노의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왕실 가례시 의대에 포함된다. 다만 흉배 부착여부, 옷의 색깔에 따라 신분을 구분했다. 중궁전세자빈궁 가례시 상궁 이하 시녀 및 유모기행나인 등은 흑색과 홍색의 장삼을 최고의 예복으로 입었는고, 숙의 가례이하 대군의 부인, 공주, 옹주 등의 혼례에 참여하는 유모와 기행나인 등은 아청색의 옷을 예복으로 착용했다. 홍장삼에 수를 놓은 예복을 공주옹주 등이 입을 때는 활옷이라고 했으므로 신분과 복색에 따라 명칭을 달리했다.

 

원삼은 조선말의 최고의 예복이다. 조선말 예복이 원삼으로 집약될 수 있었던 것은 노의, 장삼, 원삼 등 예복의 형태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분에 따라 복식의 색깔, 색동의 색깔, 흉배 여부 등이 달랐다.

 

머리 치장에서는 머리 빗기, 머리 땋기, 왕비왕세자빈왕세손빈의 체발(머리 꾸미기를 만들기 위한 가발), 수식(적의를 입을 때 꾸미는 머리장식 전체), 면사가 소개된다. 체발을 고정하고 꾸미기 위한 장신구로 비녀, 잠두의 모양과 소재에 따른 여러 가지 잠 등을 소개한다.

 

몸치장을 하는 내용에서는 상의(삼아-저고리나 고의 안에 받쳐 입는 속옷, 활한삼-저고리안에 입는 소매가 긴 옷, 호수-솜을 둔 저고리 류, 저고리- 여성의 대표적인 상의, 고의-왕실 여성만이 착용한 자주색 깃이 달린 저고리 류, 개오-왕실 여성의 특별한 상의), 하의(니의-속치마, 치마-여성의 대표적인 하의, 친의-속옷)에 대한 소요량 등의 도표가 제시되었다.

 

4부에서는 왕실 복식을 책임진 기구가 소개된다. 앞에서 살펴본 복식 관련 정례류를 중심으로 각 관아에서 시행하던 모든 조례와 여러 관사의 시행 규정을 모안 놓은 법령집인 육전조례경국대전을 토대로 왕실복식이 어디서 어떻게 제작되고 장만되었는지 소개한다.

 

상의원은 왕실에서 필요한 복식을 바치는 공급자이면서 직접적인 생산자로서 왕실복식을 책임지는 주무기관이다. 육전조례경국대전의 상의원 조직, 육전조례경국대전의 상의원 소속 장인, 상의원의 역할이 나온다. 상의원은 진상, 물목 장만, 물목 관장으로 구분하여 왕실에서 필요로 하는 복식을 장만하는 내용이 책에 나온다. 상의원은 국가 의례에 필요한 모든 의대와 품의한 내용의 복식을 진상하는 것이 최대의 의무였다. 필요한 물목을 미리 확인하여 구입해야 할 물목들을 정리하고 준비하고, 재고가 없는 것을 확인하는 일도 상의원의 몫이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호조와의 긴밀한 관계가 필수적이다.

 

상의원에 소속된 사람들 중 복식을 직접 제작하는 사람들은 침선장과 침선비이다. 이 책에서는 상의원 사람들 중 침선을 직접 담당하는 침선비(침선비가 되려면, 침선비의 역할, 침선비의 노임), 장인, 상의원 관리(청렴한 관리, 제작도 등)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제용감은 왕실의 또 다른 내탕고(조선시대 금··비단·포목 등 왕실의 재물을 보관하던 곳간)의 구실을 하며 왕실에서 필요로 하는 포물을 수납하고 임금이 하사하는 의복을 만드는 일이 주 업무이다. 책에는 제용감의 위치와 조직, 역할 등이 나온다. 제용감 터(위치)는 지금의 서울시 수송동 근처이며 정도전이 살던 집터의 일부였다고 한다. 제용감은 초기에는 정3품 아문이 관장하였으나 후에 호조가 관할하는 조직이 되었다.

제용감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중국에 진헌하는 물목을 관리하고, 임금이 하사하는 의복을 담당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인 역할을 살펴보면 진공 및 진배(포나 모시 등 각종 직물을 각 전과 궁에 올리는 것), 수납(진헌할 물목을 수납하는 일), 의복 제작보관지급, 면포 관리, 식물성 염료와 광물성 염료로 염색, 관리들의 복식을 제작하고 관리하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임진왜란을 겪은 후에는 관리의 제복을 개인적으로 장만하고 사치로 흐르면서 생긴 문제로 국말까지 제용감에서 제작하여 지급 관리하였다. 제용감에서 내리는 의복은 왕의 하사품이므로 옷을 만들 때 정성을 들여야 하며, 관리를 철저히 하여 옷이 오랫동안 변색되거나 해지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 관리를 소홀히 한 데 따른 책임을 따진 것이다. 또 필요한 물건을 제때 갖추지 못한 데 대한 책임도 져야 했다. 제용감의 관리들은 어고의 물건을 직접 대하는 사람들이므로 특히 조심해서 가려 썼으며, 무엇보다 숫자에 밝고 청렴한 사람을 제수하고자 했다.

 

호조는 오늘날의 기획재정부에 해당하는 기관으로서 호구, 공납, 부사, 조세 및 국가 재정과 관련된 부분을 담당한다. 조선 왕실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물목 중 공납은 물론 때때로 필요한 물목을 조달하는 윤활유와 같은 기능을 했다. 공납 받은 물건은 상의원이나 제용감에 조달했으며, 부족한 물목은 무역을 통해 조달하는 등 호조의 도움이 없이는 왕실의 복식이 제대로 갖추어질 수 없었다. 이 책에는 호조에서 복식과 관련된 공상(각 지방의 토산물을 각 전궁에 진상하는 것)4전궁(대전, 중궁전, 세자궁, 세자빈궁)에 올리는 직물이 제시되었다.

기타로 간품(왕실에 진상하거나 진헌할 품목을 미리 살피고 관리하는 역할)과 하사품 전달(70세가 넘은 사람으로 자손과 족친이 없어 다른 집에 밥을 붙여 먹고 있는 자에게 의복을 전달하는 일을 관할), 제조(제복이 부족할 때 표본 형식으로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주고 다음부터는 직접 제작하거나 수선해서 쓸 수 있도록 조치)하는 역할이 구체적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