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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장수한 영조의 식생활

주지태 2014. 6. 16. 21:45

 

 

 

 

○ 도서명 : 장수한 영조의 식생활

○ 저자 : 주영하

○ 발행처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초판 1쇄 발행일 : 2014년 6월 10일

 

 

조선시대는 장수를 누린 국왕이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장수를 누린 국왕은 어떤 생활과 건강식으로 장수를 누릴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27명의 국왕중 60세를 넘은 왕은 5(18.5%)이다.

수명 순으로 구체적으로 적으면 영조 83, 태조 74, 고종 67, 정종 63, 숙종 60세이다. 이 책은 영조의 장수를 누리게 만드는 행정부서와 사람, 음식 그리고 보약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영조의 비슷한 체질을 보이는 사람은 영조의 식생활을 통하여 건강 증진 정보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조 자신의 몸이 허약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보완 극복하기 위해 생활을 검소하고 건전하게 이끌어갔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이 책은 영조의 장수를 책임지는 행정부서와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 사옹방은 왕과 왕비 그리고 세자의 음식생활을 지원하는 행정부서이며, 사선서는 왕실에서 필요로 하는 식재료를 공급하는 일을 하였다. 사옹방과 사선서는 종종 업무에 혼란이 있어 서로 분쟁을 일으키자 세조때 사옹방을 확대하여 사옹원으로 바꾸고 사선서는 얼음과 미곡 그리고 왕실의 장 종류(젓갈, 된장, 간장)을 관장하였다.

 

사옹원이 일상과 의례의 음식을 장만하는 역할을 했다면, 내의원은 궁중의 의약을 맡은 관청이다. 내의원에 근무한 의원들은 철저한 심사를 거쳐 선발하였기에 의술이 뛰어난 인물들을 배정하였다. 조선 초기의 내의원의 어의들은 침이나 뜸을 통한 치료와 함께 음식으로 병을 다스리는 식료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특히 영조 때에 와서 왕의 건강과 질병 치료는 보약을 통해서 인체의 허약한 부분을 다스리는 방법이었다.

 

다음으로 영조가 즐겨들던 음식과 영조에게 제공된 보약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만드는 지에 대하여 소개한다. 영조의 수라상은 검소했지만 타락죽, 보리밥, 고추장, 삶은 밤, 사슴 꼬리 구이, 메추라기 구이, 송절차를 좋아했다.

 

영조의 겨울철 건강식은 소의 젖으로 만든 타락죽이며 내의원에서 타락죽을 먹도록 권유받았다. 젖소의 우역이 있어 타락죽을 먹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암소의 뒤를 따라가는 작은 송아지를 보고 마음에 측연함을 느껴 타락죽을 정지토록 명한 경우도 있었다. 너무 많은 낙죽을 준비하기 위해 농사를 지어야 하는 소를 궁중에 들여놓는 사치를 싫어했다.

 

영조가 환갑을 넘기고 여름철 입맛을 잃은 때의 건강식은 보리밥이다. 위장이 약하여 소화기능이 떨어진 영조에게 보리밥은 좋은 음식이지만 여름만 되면 보리밥 수라를 올려서 영조를 곤혹하게 만들었다. 영조의 입맛을 되살리는 음식으로는 고추장이 있다. 여름이면 설사와 현기증, 그리고 한열과 갈증으로 고생을 하여 입맛을 잃어버려 자신이 여름에 즐겨 먹었던 보리밥이 싱겁게 느껴져 고추장을 즐겨 먹었다.

 

영조가 별미로 먹은 음식은 삶은 밤, 사슴 꼬리 구이 그리고 메추라기 고기 구이였다. 백성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을 왕이 나서서 하면 안 된다고 하여 사슴 꼬리를 공물로 바치는 것을 정지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사슴 꼬리로 만든 음식을 매우 좋아했기에 계속 올려졌다. 그러나 백성을 고생시킨다는 이유로 사슴 꼬리를 먹지 않았다. 메추라기 고기도 건강에 도움이 되었지만 백성들이 메추라기를 잡아 왕실에 바치는 고생을 했기 때문에 약 60세가 넘어서는 먹지 않았다.

 

영조는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사람을 본성을 해치고 미치게 만드는 것이라 하여 술을 멀리 하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소나무 지상부인 줄기와 가지에서 마디를 이루고 있는 부위를 잘라서 썰어 말린 송절로 송절차와 송절주를 만드는데 이를 약처럼 즐겨 마셔 건강을 유지했다.

 

영조가 갈증이 나서 드신 보약으로는 강귤차나 계귤차와 같은 다음을 음료이자 약으로 즐겨 먹었다. 영조는 인삼을 즐겨들었는데 스스로 인삼을 넣은 미음을 처방하여 들기도 하였다. 책에는 음식과 보약을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영조가 65세 때 병이 나자 이중탕을 달여 대령한 것을 드시고 차도가 있어 이중창의 공이라 하여 이중탕이중건공탕이라는 이름으로 하사하였다. 그러나 영조는 이중건공탕을 두고 유행과 인습의 상징으로 보았다. 말년에 기강이 해이해진 것과 이중건공탕을 신령스러운 약이라고 맹신하여 임금을 위해 새로운 처방을 내리지 않는 내의원의 형태를 비판하였다.

 

겨울철에는 전약을 즐겨 들었다. 전약 만드는 방법은 동의보감에 나오는데 전약을 만들기 위해 소를 희생하여 그 가죽으로 전약의 아교를 만들었기 때문에 폐단이 없지 않았다. 이외에도 영조의 건강을 지켜 준 탕제들로 군자탕, 오적산, 정기천향탕, 곽향정기산, 여곽탕이 소개되었다.

 

지금까지 영조가 드신 음식과 보약을 살펴보았지만 무엇보다도 영조의 건강 장수비결은 식생활태도에 있다. 스스로 건강을 챙기고, 부지런하고 어제를 집필하며 마음을 다잡았던 것이다. 영조는 만약 절식을 하지 않고 기름진 음식 맛과 술을 탐하는 일은 모두 몸이 병이 들게 하는 빌미다.”라고 하며 절식을 강조하고 실천했다.